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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괴담 - 교통사고 다발지역

자, 내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몇가지 당부할 것이 있어. 첫번째로는 내
얘기가 어디까지나 진실이라는 것과 두번째는 앞으로도 내가 겪은 일이
언제라도 생길 수 있다는 거야.

아, 참... 오늘 처음 보는 사람들도 몇있는데... 내가 대뜸 반말부터 하
니까 기분이 안 좋지? 훗... 미안해. 나는 원래 이렇게 가 없거든?
나도 예의를 갖추어 얘기하고 싶은데... 애당초 타고 난 게 이런 놈이라..
또, 간혹, 얘기의 내용이 앞뒤가 안맞거나 어법에 이상해도 이해해줘.
난 원래 무식한 놈이거든? 풋...

아무튼 간에 내 얘기가 재미있고 또 으시시하다면 귀에 거슬리는 반말이
나 또 이해가 좀 안가는 부분이 있어도 눈감아 주겠지? 이런 얘기는 흔하
게 아무데서나 들을 수 있는 그런 것도 아니고, 더욱이 너희들 앞에 언제
닥칠 지도 모르는 얘기니까 말이야. 후. 후. 후.

자, 그럼 슬슬 얘기를 시작해 볼까? 그런데... 흠... 갑자기 목이 마르군.
누구 시원한 맥주 가진 사람 없어? 없다고? 할 수 없구만... 목이 컬컬해
도 그냥 하는 수 밖에. 안타까운걸? 좀더 멋진 목소리로 얘기하고 싶었는
데 말이야.

아, 그래 너... 네가 마시고 있는 것... 나좀 줘. 맛있어 보이는데? 뭐?
짜식... 먹는 거 가지고 치사하게 굴지마. 나도 한때는 잘 나가던 놈이었
다고. 그래, 그래... 순순히 줘야 착하지. 읍... 이게 뭐야? 맛이 왜 이래?
옛다. 너, 다 먹어라. 에이 괜히 입맛만 버렸네...

너희들... 화나기 시작했구나? 얘기는 안 하고 뜸만 들인다고... 알았어.
미안해. 이제부터 진짜로 시작할께. 헌데... 나는 한번만 얘기하는 성격이
야. 괜히 또 해달라고 조르지 마. 난... 누구 말대로... 죽어도 리바이벌은
안 하는 성격이라고. 하. 하. 하.

에헴... 내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우선 내 직업에 대해서 설명해야 할 것
같군. 난 일년전 까지만 해도 서울역에 있었어. 아니... 역무원이 아니
라... 그래 너 똑똑하구나. 거기서 먹고 자고 했단 말이야. 그러니까...
흔한말로 "노숙자"였단 말이지.

호~ 그러고 보니까 너... 서울역에서 몇번 본 것 같다. 그치? 너도 나와
같은 생활했구나. 짜식... 얼래? 아니면 관두지... 왜 화를 내니? 쪼잘하
게... 하. 하. 하. 엉? 노려보지마. 알았어. 계속 얘기할께. 오랜만에
같은 처지에 있던 놈을 만났나 해서 반가워 그런거지, 뭐... 후후후

하여간 그렇게 지내다 보니 도저히 안되겠더라고. 남자 놈이 매일 빌어
먹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며칠동안 길거리를 헤매며 궁리를
했지. 괜찮은 돈벌이 없나 하고 말이야. 그러던 어느날... 서울역 지하도
계단에서 평소처럼 쭈그리고 누워 신문지만 한장 달랑 덮고 잠을 청하는데
느닷없이 밖에서 "꽝"하는 소리가 들리더라고...

조금 후에 비명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왁자지껄하는 아우성이 들리더군.
나는 이래뵈도 호기심이 꽤 강한 사람이거든? 졸음을 쫓으며 지하도를
뛰어 올라 가봤지. 그랬더니 세상에... 어떤 일이 벌어진 줄 알아? 거리
가 온통 아비귀환인 거였어...

남녀 서너명이 온통 피투성이가 된 채 도로에 널부러져 있는데... 한명은
머리가 깨졌는지 얼굴 형체가 없두만. 코에서는 피거품이 나오는데.. 우~
정말 끔찍하더라. 그 옆에는 초등학생정도 밖에 안돼 보이는 애도 쓰러져
있었는데... 그 애는 더 하더라고. 머리 반쪽이 짓뭉개져 있는데 노랗고
검붉은 피... 유식한 말로 뇌수라고 하나? 아무튼 그게 질펀하게 도로
위로 흐르고 있는 거야...

응... 맞어 교통사고가 난 거였어. 화물차 하나가 도로 위의 행인들을 덮
친건데... 물론 그 운전사는 술에 취해 있었다고 하더군. 뭐? 흔한 얘기
라고? 하여간 요새 사람들... 문제라니까? 자, 솔직히 손들어봐. 내가
지금까지 얘기한 것 같은 경우를 실제로 본 사람? 없지? 쓸데 없이 드라
마다 소설이다 에서 하도 괴상망측한 걸 보고 읽으니까... 감정들이 무뎌
져서 그런거지... 직접 그 앞에서 그런 광경들을 봐봐. 얼마나 메스껍고...
놀라고... 또...

어허... 아냐. 이 얘기가 다가 아니야. 이건 내 얘기의 시작일 뿐이라고.
끝까지 들어봐. 자, 이제 본격적인 얘기를 할 테니... 내가 그 광경을 보
고 머리에 퍼득 스친 건... 저 장면을 비디오로 찍어두면 어떨까 하는 거
였어. 연달아 이런 생각도 들었지.

너희들도 알지? 길거리를 지나가다 보면 가끔 신호등 근처에 현수막이 걸
려 있잖아? "교통사고 목격자를 찾습니다." 어쩌고 하는 거 말이야. 대개
끝에는 "후사하겠슴."이란 말도 잊지 않고 써있지.

그래 바로 그거였어. 대부분의 교통사고는... 음... 물론 그날밤에 본 건
서울역 한 복판이었으니 목격자도 많고 또 금방 사고를 낸 운전자를 잡았
으니 별 문제 없었지만, 사람들도 별로 없는 후미진 곳에서 교통 사고를
내면 현실적으로... 달아나도 잡기가 힘들잖아?

그리고 만에 하나 사고를 낸 놈을 잡았다고 해도 서로 자기 잘못이 없다
고 할테니 판단하기도 곤란할테고... 그래서 생각한 건데... 그런 사고
가 일어날 만한 곳에 비디오 카메라를 설치하자는 거였어.

어? 너 어디가? 내 얘기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어쭈? 재미없다고? 짜식이
왜 그렇게 참을성이 없냐? 자... 끝까지 듣고 판단하라고. 그래, 그래
착하다. 자리에 앉아서 내 얘기를 마저 들어...

그래서 그날, 잠 한숨 안 자며 궁리를 했지. 일단 비디오 카메라를 설치
하면 분명히 착한 일도 하고 돈도 벌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말이
야. 막상 일을 시작하려고 하니 두가지 난관에 부딪쳤어. 맞춰봐. 뭘 것
같니? 짜식들 머리를 쓰란 말야.

그래... 음... 비슷하긴 하구나. 응, 네 말이 맞아. 바로 그거야. 나같이
하루 빌어 하루 먹고 사는 놈이 비디오 카메라가 어디있겠으며 또 그걸
구한다고 해도 어디에 설치해야 사고 장면을 찍을 수 있겠느냐 하는 거
였어.

그런데 생각외로 첫번째 것은 별 문제 없이 해결됐지. 나하고 같이 길거
리에서 자던 놈 중에 왕년에 도둑질로 명성을 날리던 늙은이가 한명 있
었거든? 그 영감탱이가 늙으막에 마음잡고 깨끗이 산다고 빌어먹고 지냈
는데 말이야...

그 늙은이 힘을 좀 빌렸지. 좋은 일에 쓸거라고 구슬리니까 몇시간도 안
돼서 무지하게 최신형 비디오 카메라를 구해다 주더군. 그 늙은이... 그
재주 아깝두만. 그런 능력이 내게 있었다면 그러고 살지는 않을 텐데...

어쨌든... 비디오 카메라는 구했으니 다음 문제... 그래, 그러니까 어디
다가 그걸 설치해야 그런 장면을 손쉽게 찍을 수 있을까 하는 거였어. 그
러다가 묘안이 떠올랐지. 훗... 내가 생각해도 멋들어진 생각이었는데...
그게 뭐냐하면 말이야...

너희들 그런 얘기 알아? 교통사고도 한번 일어난 곳에서 자주 일어난다는
얘기 말이야. 왠지 모르지만 모든 사고가 다 그렇다고 하더군. 그래서
동네마다 돌아 다니며 목록을 작성했지. 최근에 가장 빈번하게 교통 사고
가 난 곳을 조사했단 말이야. 열흘동안 정말로 고생 많이 했다. 서울 시내
곳곳을 돌아 다니며 파출소도 가보고 복덕방도 다니고 해서 겨우 한군데를
선택했지.

얘기를 듣자하니 그곳은 보통 일주일에 한번씩은 크고 작은 교통사고가
난다고 하더라고. 과연 현장 답사를 하니 그럴만도 했어. 커브길에 보일
락 말락하게 신호등이 있었는데 그 전방에는 터널이 있고 새벽에는 툭하면
안개가 짙게 끼는... 그야말로 사고나기 딱 알맞은 위치더군.

일단 힘들었던 두가지 준비를 마쳤으니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했지. 그
래... 맞아. 신호등 근처... 눈에 잘 안띄는 곳에다가 비디오 카메라를
설치한 거야. 마침 신호등 뒤쪽이 야산이라 안성마춤이었지. 이제 내가
할일이라고는 비디오 카메라를 켜놓고 흙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두어시간
마다 찍힌게 뭐 없나 확인하고 다시 새 테이프로 갈고... 하는 것 뿐이었
지.

한건만 걸려들면 목격자로만 나서도 최소 몇백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기다렸어. 뭐? 아니 너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게 현실적으로
될 법이나 한 얘기냐고? 풋... 같은 놈... 비디오를 설치하고 이틀후
정말 내 생각대로 사고가 났고 또 내가 직접 목격했다고. 안 믿기지? 진
실이야... 그곳 신호등에서 어느 검은 승용차 하나가 사람을 치고는 그냥
뺑소니를 쳐버렸는데...

막상 사고가 나니까... 갑자기 갈등이 생기더라고. 내가 처음에 얘기했지?
내 계획은 교통사고 목격자가 되서 뺑소니범을 잡아 주어 착한 일도 하고
또 사례금을 챙기기로 했었다고... 그런데 무슨 갈등이냐고? 훗... 잘
들어봐... 처음으로 교통사고를 목격한 날... 그러니까 더 정확히 얘기
하면 사고가 나는 소리를 들은 날...

아, 참... 너무 두서없이 얘기했나? 더 자세히 말해주지. 그때가 새벽이었
거든? 아마 한 3시쯤 되었을 거야. 봄이라해도 조금 쌀쌀한 날씨에 그곳은
여느때처럼 안개가 잔뜩껴서 더욱 을씨년했는데...

나는 산속에서 웅크리고 졸고 있었어... 그때 승용차가 급정거하는 "끼
이익" 소리가 들리더니 여자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들렸던 거야. 엉겹결
에 일어나 신호등 쪽을 바라보니 검은 승용차는 이미 터널 속으로 달려
간 후였고 긴머리 여자만이 도로에 죽은 듯이 누워 있더라고...

그런데... 아까 말한 갈등이란 건 말이야.... 내가 달려 내려가 여자를 병
원으로 데려가고 뺑소니한 차를 잡는 것을 도와 줄까... 아니면... 훗...
아니면... 뭘것 같아? 그래. 코 이상하게 생긴 놈... 네말이 맞아...
분명히 차 넘버가 찍혀 있을 그 테이프를 가지고 검은 승용차 운전사를
찾아내서 협박을 할까하는 순간의 갈등을 말하는 거지...

너희 같으면 어느 쪽이 돈벌이가 더 될 것 같니? 검은 승용차는 우리나라
최고급 모델이었고... 달아나는 폼으로 봐서는 분명히 음주운전인 것 같았
는데... 맞아. 난 후자를 택했지. 모른 척하고 놔두었다가... 나중에...
협박을 하기로...

그렇게 결정을 하고 다시 숨으려고 하는데... 사고를 당한 여자가 좀 불
쌍해 보이더구나. 그렇다고 내가 지금 나서면 경찰에서는 꼬치꼬치 캐물
을 거고... 결국 내 스스로 승용차 번호를 확인시켜 줄테니... 그러면
사례금이라 봤자 몇푼 못 건질 것 같고...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간사하
지? 돈이 눈앞에서 왔다갔다하니까... 금방 사악한 마음이 들더라고.

더군다나 한가지 더... 그때까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걱정이 나를 그냥
지켜보게 하는데 한몫을 했지. 그게 뭐게? 휴~ 바보들... 그러니까 너네
들이 이 정도밖에 출세를 못한 거야. 아, 넌 좀 똑똑하구나. 바로 그거야.
만일 경찰에서 내가 거기 왜 있었으며 또 비디오는 왜 찍고 있었냐고
물으면... 꼼작없이 이상한 놈으로 몰릴테고... 잘못돼면...

그래서 담배를 하나 꼬나물고 조용하게 지켜보는 쪽을 선택했지. 물론 마음
한구석에서는 어서 다른 사람이 나타나 신음하며 피를 흘리는 가련한 저
여자를 구해 주기를 바라면서 말이야.

쓰러진 그 여자는 간혹 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는데...
사실... 안타깝기는 하더라. 그러나 뭐 어떻게 하겠니? 이미 숨을 헐떡이
는 것으로 봐서는 병원에 데려간다 해도 곧 죽을 것 같았는데...

두 눈을 질끈 감고 그냥 있었지. 그렇게 한참이 지나니까 뿌옇게 동이
터오고 차들이 조금씩 다니더라고. 결국? 지나가던 버스 한대가 그 여자를
발견하고는 멈춰서더니 신고를 했고... 앰블런스 오고... 경찰차 달려
오고... 그때서야 슬그머니 산을 내려가 그 여자를 봤는데... 진짜 처참하
더라고. 목이 너덜너덜 하더라니까? 조금전 내 행동이 약간 후회도 됐는
데... 뭐 어쩌겠어? 어차피 엎지러진 물이지...

그만 얘기하라고? 잠깐만... 10분만 더 시간을 줘. 나도 이 얘기는 끝내야
편히... 훗. 고마워. 머리 벗겨진, 네 놈이, 좀 마음이 넓구나.
어? 그런데... 너는... 나와 안면이 있는 것 같은데... 어디서 봤지?
요새는 기억력이 없어서 말이야. 훗, 좋아... 어쨌든... 이제부터는 빨리
얘기할께... 얼마 남지도 않았으니까... 끝까지 좀 들어라. 참을성을 가지
고 말이야.

교통 사고가 수습되고 사람들이 돌아가자 나는 비디오 카메라를 소중히
안고 서울역 근처에 있는 낡은 빌딩으로 갔지. 평소 눈여겨 봐두었던 곳
인데... 철거 직전의 건물이라 사람들도 없었고... 전기는 아직 들어오는
곳이라 비디오 카메라 배터리 충전하기에는 알맞은 곳이었거든? 더우기
찍은 테이프도 확인해야겠기에... 조용한 그곳으로 갔는데...

비디오 카메라에 달린 액정화면을 통해 테이프를 다시 돌려 보는데...
어떤게 찍혀 있는 줄 알아? 휴~ 그 생각만 하면 아직도 등골이 써늘하다.
사고를 당한 여자가 신호등에서 길을 건널려고 그랬는지 멍하니 서있었고..
멀리서 검은 승용차가 달려오는데... 갑자기 그 여자 뒤에서 희끄무레한
물체가 튀어 나오더니 그 여자를 확 밀치는 거야. 그 여자는 튕기듯이
밀려나가 그 차에 깔렸고...

처음에는 내가 잘못봤나 하고 몇번이나 다시 틀어봤지. 그러나 보면 볼
수록 확실해지는 거야. 그 희끄무레한 물체도 점점 사람 형체 비슷하다
는 생각이 들고... 오싹하더라고... 도대체 여자를 밀친 그건 무엇이며...
또...

그 다음 순간부터는 검은 승용차에 대한 생각은 뒷전이고 그 이상한 사람
형체의 물체에 관심이 쏠렸지. 어차피 검은 승용차의 넘버가 확실히 찍혔
으니까 나중에라도 운전사를 잡는 건 시간 문제였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어? 너, 말해봐. 아니, 코 큰 놈 말고...
너 말이야. 그래. 바로 너... 뭐라고? 바보같이... 당연히 그 사고가 난
곳을 돌아다니며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 봐야하는 거 아냐? 네가 말한대로
무작정 거기서 지켜보는 건 그 다음 일이고 말이야.

그래... 난 그 동네를 샅샅이 뒤지며 그런 형상을 봤다거나 혹은 그 일에
관해 아무거라도 있을까 하고 알아보기 시작했지. 그러다가 희한한 사실을
듣게 되었어. 뭔지 궁금하지? 히. 히. 히. 맥주가 없다면... 음... 냉수
라도 가져다 줘. 마자 마시고... 응... 그래. 아주 시원하군. 자, 잘 들어
봐. 그 동네에... 그러니까 그 신호등에서 몇주전에 이상한 교통 사고가
났었다는 거야. 이상한게 어떤 거냐 하면...

사람들 얘기로는 그 신호등에서, 그때도 새벽 시간쯤이었는데, 한 여자가
교통사고를 당했데. 그런데 이상하다는 건 사고를 낸 운전사가 다친 여자
를 뒷좌석에 싣고 병원으로 급히 갔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사람이 없더라는
거야. 뒷좌석 시트에는 분명히 사람이 누워 있던 것처럼 마구 구겨지고
또 야릇한 피냄새까지 풍겼는데 말이야.

그 운전자는 놀라서 경찰에서 제대로 진술도 못했데. 분명히 자신이 사람
을 쳐서 병원까지 갔는데 사고난 당사자가 없으니 얼마나 황당했겠어.
나는 그 얘기를 듣자 마자 온갖 수소문을 해서 사고를 낸 운전자를 찾았지.
찾고 얘기를 나누다가 그의 차를 확인해 보니... 누구였는 줄 알아?
바로 내 비디오에 찍힌 그 검은 승용차의 운전사더라구... 점점 흥미로와
지지?

풋~ 나는 문득 좋은 기회다 싶어 내가 찍은 그 비디오 얘기를 해줬지.
그놈... 얼굴 색깔이 누렇게 되더니 정색을 하며 내 말을 못믿겠다는 거
였어. 나는 순순히 복사한 테이프를 틀어 보여 주었지.

그러자 어떤 일이 생긴 줄 알아? 유심히 그걸 보던 그 놈이 갑자기 비
명을 지르며 벌벌 떠는 거야. 나는 이상해서 왜 그러냐고 물었지. 그는
공포에 잔뜩 질린 얼굴로 주절대기 시작했는데... 자신이 친 두번째 여자
얼굴이 처음에 자신이 치었던 여자와 같은 여자라는 거야.

훗... 이해가 가? 그 운전자는 같은 여자를 두번 친 셈이 된거지. 한번은
진짜 사람을... 한번은 전번에 쳤던 같은 여자의 시체를... 왜 고개를 갸
우뚱거리는 거야? 아직도 이해가 안가? 참나 답답하군... 그러니까 간단
히 말해서 그 운전자는 처음 그 여자를 자신의 차로 치었을때...

경찰에 신고를 하고 정신 없이 자신의 차에 싣고 가다가 마음이 바뀐거
야. 사회적으로 지위도 있던 그로서는 그 일이 자신의 직업에 치명적일
수 있었으니까. 그러니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그녀를, 그 신호등에서 100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차를 세우고 몰래 생매장을 한거지. 나중일이야
어떻게 되겠지하고 말이야.

그의 생각대로, 경찰이 아무리 조사를 해도 그 운전자는 미 같은
얘기만 주절대고 또 치인 여자도 찾질 못하니 불구속으로 풀려나 있던
거지. 뭐라고? 그 운전사 직업 말이야? 훗... "사"자 직업이야...
"사"자... 그래 변호사였어. 재미있지?

뭐라고? 말도 안 된다고? 처음 교통사고는 그렇다 쳐도... 두번째 사고
말이야? 흠... 내가 말하고 보니 너희들이 이해를 못하는 것도 당연할 것
같구나. 음... 그러니까 두번째 사고는 죽은 그 여자의 원혼이... 생매장
된 자신의 육신을 꺼내 그 승용차가 그곳을 지나가기를 기다려... 일으킨..
어? 웃네? 참나... 아무튼 끝까지 듣고 내 말을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
고. 이젠 나도 지쳤어. 내 말을 믿는 사람이 이리도 없으니...

아무튼... 연달아 두번이나 일으킨 교통사고 얘기를, 그 놈은 나같이 하
잘 것 없는 인간에게 무릎을 꿇고 울부짖으며 손이 떨어져 나가라 비벼
대며 애걸하두만. 제발 한번만 봐달라고...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어쩌면 더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여겼지. 그날 겪은 희한한 일이 내 상
식선에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어도... 어차피 나는 돈이 목적이었던
셈이니까 말이야.

그런데... 그 일이 그렇게 끝났으면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지도 않겠지.
또 너희들도 이 얘기를 들을 필요가 없었을 거고. 흠흠흠... 며칠이 지나
고... 나는 그놈에게서 거액을 받고 그 문제의 테이프를 돌려 주려고 약
속한 전날 밤... 내게 또 하나의 희한한 일이 생긴거야.

그날밤, 다음날이면 내 손에 들어올 거액을 생각하니 마음이 들떠 잠이
오지 않더라고... 그래서 낡은 그 건물에서 나 혼자 조촐한 파티라도 열
요량으로 술과 안주를 사다놓고 기분 좋게 몇잔을 들이키는데... 어디선
가 갑자기 차가운 바람이 불어 오더니... 문제의 비디오 테이프 원본을
숨겨 놓은 녹슬은 철제 캐비닛 속에서 왠 여자가 "스으윽"하고 걸어나오
는 거야.

진짜로 머리칼이 쭈뼛 서더군. 나는 원래 무서움을 잘 안타거든? 무서움
이라는게... 죽어도 그만인 나같은 사람에게는 사치일 뿐이지. 그런데...
분위기가 정말로 두렵기만 하더라고. 나 혼자 다 쓰러져가는 건물에서
귀신을 본거니 말야.

어어? 또 웃네? 이젠 너희들에게 신경 안 쓴다. 그저 내 얘기만 해야지...
흠... 그 캐비넷 속에서 나온 여자는 바로... 맞아. 그때 교통사고로
죽은 그 여자였지. 그렇게 얼굴이 창백한 여자는 처음 봤어. 물론 귀신
이니까 그랬겠지.

그런데 말이야... 처음 캐비넷에서 튀어 나오는 그녀를 봤을 때는 정말
소름이 쫙 끼치더니 일, 이분 쯤 지나니까 아무 생각도 나지 않더라고.
우습게도 옛날 얘기까지 머리에 스치며 말이야. 어떤 얘기냐고? 거 있잖
아 귀신의 원한을 풀어준 사또 얘기라든가... 하는...

아무튼 그 여자는 다소곳이 내 앞에 앉더니 아무말 없이 내 눈만 바라보고
있더군. 뭔가를 원하는 듯한 눈망울에는 피눈물이 잔뜩 고여 있었고...
저 여자가 도대체 나에게 뭘 원하는 걸까 하는 생♣?드는 순간... 계단
밑에서부터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라고... 그 여자는 여전히 나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는데... 도대체 누가 오는 것일까 궁금했지.

이윽고 발자국 소리가 그치더니 어둠속에서 남자가 불쑥 나타나?거야.
짐작들 했겠지만... 맞아. 바로 그 변호사였어. 그는 내 뒤를 조사했던 거
야. 그래서 밤중에 나를 어찌할려고... 그런데 웃긴건 뭔줄 알아? 내 눈
에는 분명히 그 죽은 여자가 보이는데 그는 그녀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것
같았어.

그 여자의 창백한 볼에는 피눈물이 계속해서 흐르고 있었는데 말이야. 나
는 그가 온 목적을 뻔히 짐작하면서도 그 여자의 기묘한 행동에 정신이
팔려 가만히 있었지. 변호사는 다짜고짜 내 멱살을 움켜 쥐고는 테이프
원본을 내 놓으라고 윽박지르더라고... 물론 어느정도 예상은 했던 일이
었지만 말이야...

그런데, 여전히 그런 그의 뒤에서는 그 여자가 물끄러미 쳐다보고 서있었
는데... 내 입은 얼어붙은 것처럼 아무말도 나오지를 않는거야. 넋이 반쯤
빠져 그에게 물었지. 뒤에 있는 그녀가 보이지 않느냐고... 그는 조심스럽
게 뒤를 돌아보더군. 역시 그의 눈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았어.
그저 허황한 시선으로 컴컴한 뒷편만 훑더니 험악한 얼굴로 나를 창밖으로
끌고 가더군.

나 혼자 힘으로 그런 약골 쯤은 한손으로도 간단히 처치할 수 있었지만...
왠지 이상했어. 왜 그녀는 그의 주위를 빙빙 돌고만 있는 것인지 말야.
그 여자의 얼굴 표정에서 뭔지 모르는 그에 대한 연민같은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어.

그때 그가 이죽거리며 나를 반쯤이나 창밖으로 밀어 내더니 외치더라고.
뭐라고 했는지 알아? 어.. 어. 잠시만 더 시간을 줘. 어서 얘기를 끝낼테
니... 휴~ 고마워... 역시 대머리, 네가 이 중에서 제일 낫구나...

그가 이렇게 말했지. "이 개야... 그년은 내가 일부러 죽인 거야. 그
년은 술집년이었다고... 그런데 하룻밤의 실수 때문에 내 약점을 쥐고 내
명성과 권위를 모두 무너뜨릴려고 했다고... 그년처럼 악독하고 질투많은
년은 평생 처음이었어... 그래서... 없애 버린건데... 그런데 네가 왜 그
년 시체를 파내서 다시 사건을 일으킨 거야? 응?"

그 놈은 처음 그 여자를 칠 때 실수로 그런게 아니었어. 일부러 교통사고
로 위장하고... 그런데 그놈... 한가지 착각을 하고 있더군. 내가 일부러
그 여자의 시체를 꺼내 장난을 친 줄 알더라고. 어이가 없더구만. 그런데
핏발 선 눈으로 그렇게 말하는 그의 뒤에 서있던 그 여자가 어떻게 했는
줄 알아?

갑자기 울분에 가득찬 얼굴로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마치 영화의 한장면
처럼 내 몸 속으로 미끌어지듯 "스르르" 들어 오는 거야. 깜짝 놀랐지.
그 뒤는 내 정신이 아니었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온몸이 움직이면서...
내 목을 조르는 그를 밀치는가 싶더니 곁에 놓인 돌로 그의 머리를 짓이
기는데...

물론 내 육신을 빌어 그 여자가 한 행동이지만... 정말 끔찍했어. 느닷
없는 내 행동에 기가 질려있던 그의 머리는 5분도 안돼 짓뭉개졌고 피뭍
은 살점은 사방으로 튀겼는데...

휴~ 정신을 차린 후 그의 모습을 살펴보니 정말로 처참하더라고...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어쩔줄을 몰라하다가 피가 흥건한 변호사 시체를
캐비넷속에 감춰 두었는데...

뭐? 그 여자는 어떻게 됐냐고? 흠... 아직도 내 몸속에 있어. 그 여자는
그날밤 내 몸속에 들어온 이후로 내게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 거야. 계
속 머무르며 가끔 발작을 일으키는데 그럴때마다 내 의지란 없었지.

괜히 예쁜 여자만 보면 죽이고 싶은 충동도 생겼고 잘생긴 남자를 보면
유혹하고 싶은 기분도 들었고... 안 믿겨진다고? 마음대로 해. 어차피
마지막으로, 그간의 진실을 얘기하는 것 뿐이니까. 그 동안 내손에 죽은
여자들도 다 내 몸속의 그녀가 시킨 일이라고. 몇번이나 말했지만 나는
죄가 없다니까?

뭐라고? 시간이 다 됐어? 참나... 사람 말을 믿지도 않고... 좋아. 이제
형을 집행해. 여기 있는 이 까만 두건을 뒤집어 쓰면 돼? 내목에 동아줄
은 너네가 걸어 주는 거야? 우습군... 어차피 난, 사형당하는 거 두렵지
도 않아. 내 눈으로 직접 귀신을 봤고. 또 내 몸속에 그 여자의 혼령이
있는데 뭐가 무섭겠니?

하지만... 내가 여지껏 한 얘기는 진짜야. 어느 누가 죽기 전에 거짓말을
하겠냐? 너희들... 사형수들 교수형 집행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닐테니
잘 알거 아냐? 사람들이란 죽기 전에는 모두 솔직해 지는 법이야. 나는
미친게 아니라고...

어쨌든 그간 내가 살인을 저지른 건... 내 몸속에 그 여자가 한 짓이야.
난 결백하다고. 뭐? 끝으로 남길 말? 여지껏 다 했잖아? 어서 그 레버를
당겨 내 육신을 허공에 메달으라고. 해보라니까? 아... 자... 잠깐...
그런데... 한가지 의문스러운 건...

그 여자가 만약에... 살아 있는 사람의 육신이 필요해서 내 몸속에 있는
거라면 말이야... 그렇다면 말이야... 사형을 당하고 죽어버린 내 육신
이 필요 없어지면 그 여자... 어디로 가지? 내 생각에는 분명히 다른
사람의 육신에... 아? 큭... 커억... 갑... 자... 기... 목을... 메..
달...면... 어... 떻.... 게... 해? 허헉... 크윽....... 아악~~~

*********************

강력계 이형사가 자신의 책상에서 전화를 받다가 수화기를 내려 놓고는
최형사에게 다가가 물었다.

"최형사. 오늘 박형사 봤어?"

"아니. 어제 김형민이란 놈 사형이 집행된다고 교도소에 참관하러 갔는
데... 그후로는 보지 못했어. 참, 김형민 알지? 약간 맛이 가서...
예쁜 여자만 보면 얼굴 가죽을 벗겨 죽이며 다니던 연쇄 살인범말이야.
그놈... 박형사가 잡았었잖아?"

"알지... 나도... 잘... 그런데 어제 사형이 집행됐데?"

"응... 몰랐구나. 어제 저녁에... 그런데 박형사는 왜 찾아? 무슨 일 있
어?"

"아침에 신고가 들어왔는데... 어제 사형당한 김형민이가 살인하던 수법
이랑 똑같이 어느 여자가 죽어 있는 것이... 오늘 새벽에 발견됐다는데...
내가 조사를 해보니... 살해당한 그 여자... 박형사가 자주 가는 술집 마
담이더라구. 더구나... 목격자 진술을 들어보니... 용의자 모습이 박형사
와 일치한단 말이야. 대머리 벗겨진 것하며...

용의자 옷이 어제 박형사
가 입고 있던 옷하고도 똑같고... 다른 인상착의들도... 그런데...
최형사 얘기를 듣고 보니 더 이상한걸? 사건발생 장소도 그 교도소 근처
니 말이야... 정말 모를 일이야...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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